광고
광고
광고
광고
로고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곳] 가평군 향토문화재 제3호 경현단에 가면 ②

◆편집자주 자연특별시 가평군에 국가지정 문화재는 어떤 것이 있을까? 가평문화관광신문은 지역 내 국보, 보물, 사적, 명승, 천연기념물, 중요 민속문화재, 등록문화재 등 역사가 살아 숨 쉬고 있는 추억의 장소를 찾아 나선다.

GCTN.가평문화관광신문 | 기사입력 2021/08/27 [13:41]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곳] 가평군 향토문화재 제3호 경현단에 가면 ②

◆편집자주 자연특별시 가평군에 국가지정 문화재는 어떤 것이 있을까? 가평문화관광신문은 지역 내 국보, 보물, 사적, 명승, 천연기념물, 중요 민속문화재, 등록문화재 등 역사가 살아 숨 쉬고 있는 추억의 장소를 찾아 나선다.

GCTN.가평문화관광신문 | 입력 : 2021/08/27 [13:41]

▲ 가평군 향토문화재 제3호 경현단


다음은 역사와 함께 살아 숨 쉬고 있는 12인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출처 : 다음카페 설악신선봉/  글. 이영재 )

 

정암 조광조 선생(1482~1519)은 도학을 이념으로 하는 왕도정치를 구현하려 급진적인 개혁정책을 추진한바 있으며 1510 사마시에 장원합격. 성균관에서 수학. 1515(중종10) 알성시에 2등한후 성균관 전적. 사헌부감찰. 사간원 정언 등을 거쳐 대사헌에 이르기도 했다. 

 

정우당 김식 선생 1482(성종13)~1520(중종15)운 기묘팔현의 한분으로 1519(중종14) 현량과에 장원급제 성균관 사성. 홍문관 직제학. 홍문관 부제학. 대사성에 임명. 조광조와 함께 훈구세력 제거와 왕도정치 구현을 위해 정국공신의 위훈삭제, 향약실시, 미신타파 등 개혁정치를 실시했다고 한다. 

 

잠곡 김육 선생은 1580(선조13)~1658(효종9) 1605년(광해1) 사마시에 합격. 성균관의 유적(儒籍) (청금록)에서 대북파의 영수 정인홍을 삭제하는 사건에 연루돼 대과 응시자격을 빼앗기고 가평 잠곡으로 10년 동안 낙향했다. 

 

이어 1623년 금오랑. 이듬해에는 음성현감. 1624년(인조2) 증광문과에 장원. 아듬해 9월 안변도호부사. 예조참의. 우부승지. 장례원 판결사. 1638년 충청도 관찰사-공물법 폐지와 대동법실시를 건의했다.

 

▲ 가평군 향토문화재 제3호 경현단

 

▲ 가평군 향토문화재 제3호 경현단

 

▲ 가평군 향토문화재 제3호 경현단

 

▲ 가평군 향토문화재 제3호 경현단

동강 남언경 선생 1529(중종23)12.25~1594(선조28)은 1571(선조4) 청풍군수 1573 양주목사-도봉서원창건. 1592 여주목사. 전주부윤. 공조참의를 역임한 조선최초의 양명학자다. 

 

1589(선조23) 왜란이 있을 것을 예견하고 설악면 영천부락으로 낙향. 1592(선조26)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홍천, 춘천, 가평, 양근등지에서 360여명의 근왕병을 모집 왜병과 싸워 혁혁한 전과를 올리다. 1694(숙종20) 12월 미원서원에 배향하게 된다. 

 

농담 박세호 선생은 생몰미상이며 본관은 고령. 자는 거정. 호는 농담. 청백리 박처륜의 아들. 1519(중종14) 기묘사화때 성균관 유생의 신분으로 이약수. 김수성. 윤언직. 홍순복등과 함께 조광조를 변론하는 상소를 올렸다고 한다. 

 

청강 이제신 선생은 1536(중종31)~1583(선조16) 1558 생원시에 합격. 1564(명종) 식년문과에 급제. 명종실록 편찬에 참여. 사헌부 감찰. 사간원 정언. 사헌부 지평. 1571(선조4) 울산군수. 1578 진주목사. 1581강계부사. 함경도 병마절도사 등 시문에 능하고 행서, 초서, 전서 예서에 뛰어났다고 한다. 

 

삼연 김창흡 선생은 1653년(효종4)~1722(경종2) 좌의정을 지낸 문정공 청음 김상헌이 증조부이고, 영의정을 지낸 문충공 문곡 김수항의 3남이다. 큰형은 영의정을 지낸 김창집이고 작은형은 예조판서와 지돈령부사를 지낸 김창협이다.

 

남도진 선생은 1674(현종15)~1735(영조11) 본관은 의령. 자는 중옥. 호는 농환재이다. 조선 개국공신 남재의 11대손으로 국문 작품저서 중 농환재 가사집에 실린 “낙은별곡”과 단가 3수가 전하며 그가 24세에 금강산에 다녀와서 지은 봉래가는 현재 전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원충 선생은 1570년(선조3) 8.11~1646년(인조24)6.19 본관은 전주. 자는 백신(伯藎). 호는 자잠옹이다. 광해군이 선조대왕의 계비인 인목대비(영창대군의 어머니)를 서궁에 유폐하자 동학유생 조경기, 홍남철등 8인과 함께 구모소(救母疏)를 올린다.

 

이항로 선생은 (1792~1868) 본관은 벽진. 자는 이술. 호는 화서. 경기 포천 출신 3세에 천자문을 떼고, 6세에 십팔사략을 읽고, 청황지황변을 지었으며 조선초 말기 주리철학의 3대가 중 한분이다.

 

중암 김평묵 선생은 1819(순조19)~1891(고종28). 5세에 천자문을 시작 십팔사략 및 소학을 읽고 13세에 경서를 이해했다고 한다. 저서로는 ‘중암선생문집’ 및 별집 ‘중암고’ ‘근사록부주’ ‘학통고’ ‘천군편’ ‘대곡문답’외에도 수두룩하다. 

 

성재 유중교 선생(1832~1893)은 본관은 고흥. 자는 치정. 호는 성재. 아버지는 진사 조. 어머니는 한산 이씨다. 1897년 그의 제자 유치경. 주용규에 의해 51권 26책(원집46권, 별집4권, 부록1권). 목활자본으로 편집 간행됐으며 시. 사. 잡저. 설. 차의. 소지. 논 등 그의 저작들이 들어있다. 부록에는 연보와 1832~97 문집이 간행되기까지의 기사가 실려 있다고 한다. 

 

설악면 지역에 조선최고의 성리학자들의 위신이 현재까지 살아있어 전통문화보존의 중요성을 다시금 느낀다. 

 

GCTN.가평문화관광신문

  • 도배방지 이미지

포토뉴스
메인사진
HWPL, 5‧25 세계평화선언문 제9주년 기념식 개최
1/46
기획·특집 많이 본 기사